의지가 강한 사람이 살을 빼는 걸까요, 아니면 살을 뺀 사람이 의지가 강한 걸까요? 저는 오랫동안 전자를 믿었고, 그래서 매번 실패할 때마다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고도비만인의 자력 감량 성공률이 금연 성공률(3%)보다도 한참 낮은 0.6%라는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뭔가 단단히 잘못 짚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었습니다.

고도비만 자력 감량 성공률, 왜 이렇게 낮을까
저는 덴마크 다이어트부터 저탄고지, 황제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까지 이름 있는 방법은 거의 다 시도해봤습니다. 덴마크 다이어트로 16kg 넘게 빠졌을 때는 '이번엔 진짜다' 싶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전부 돌아왔습니다. 저탄고지로 9kg을 뺀 뒤 8개월 넘게 버텼을 때도 결국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마다 실패의 원인을 전부 제 의지 탓으로 돌렸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완전히 잘못된 자기 진단이었습니다.
비만의 본질은 식욕 조절 시스템의 오작동에 있습니다. 여기서 식욕 조절 시스템이란 뇌의 시상하부를 중심으로 렙틴(leptin), 그렐린(ghrelin) 같은 호르몬이 균형을 이루며 포만감과 배고픔을 조절하는 기전을 말합니다. 비만 상태가 되면 이 기전 자체가 망가져 있어, 아무리 강한 의지로 식사량을 줄여도 뇌가 끊임없이 더 먹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닭가슴살과 고구마만 먹으며 하루 몇 시간씩 운동해도 결국 폭식으로 무너졌던 건, 제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체질량지수(BMI)가 30~35 사이인 사람이 9년 후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을 확률은 고작 0.6%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체질량지수(BMI)란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표준 지표입니다. BMI 40 이상의 고도비만에서는 이 수치가 0.0%대로 더 낮아집니다(출처: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이 숫자를 보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스스로를 향한 오랜 자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20kg 이상을 스스로 빼고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며, 그게 가능한 사람은 솔직히 차력사에 가까운 수준의 인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과도한 지방 조직에서 분비되는 아디포카인(adipokine), 즉 지방 세포에서 나오는 염증성 신호 물질은 혈관벽을 지속적으로 공격해 혈관 노화를 가속화합니다. 비만인의 심혈관계 질환 발병 시기가 훨씬 빠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릎 같은 관절 손상도 체중이 줄어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비만이 길어질수록 치료의 기회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 BMI 30~35 구간의 9년 후 정상 체중 유지 확률: 0.6%
- 금연 성공률 3% 대비, 고도비만 자력 감량은 훨씬 어려운 과제
- 저탄고지·간헐적 단식 등 일반적 식이요법은 고도비만 환자에게 유의미한 효과 없음
- 아디포카인 분비로 인한 혈관 노화 가속 및 심혈관계 질환 위험 증가
- 비만으로 인한 관절 손상은 감량 후에도 완전 회복이 어려움
약물치료와 자책 사이, 제가 선택한 것
40kg을 감량한 심장내과 전문의조차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지금도 맞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예상 밖의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이 정도 전문가도 약의 힘을 빌리는구나'라는 사실이 오히려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게 약에 의존하는 나약함이 아니라, 질병을 질병답게 치료하는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걸 그때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위고비(Wegovy)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비만 치료제입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란 식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의 기능을 모방해 뇌의 포만 중추를 자극하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춰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을 말합니다. 마운자로(Mounjaro)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GIP 수용체까지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 작용제입니다. 68주 투약 후 중단하면 대부분의 환자에서 체중이 다시 증가한다는 임상 결과가 있을 만큼, 이 약들은 끊는 순간 식습관과 식욕 조절 기전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Nature Medicine).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약물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살이 빠진다는 것보다 식단에 대한 강박과 죄책감이 줄어든다는 데 있었습니다. 치팅데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필요 없어졌습니다. 치팅데이란 엄격한 식단을 유지하다가 의도적으로 규칙을 어기는 날을 허용하는 방식인데, 저는 이게 규칙 위반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가혹한 절식 후에는 어차피 폭식이 이어지기 마련이고, 운동으로 먹은 것을 보상하려는 시도도 소모 칼로리가 섭취량에 비해 너무 미미해 실질적인 의미가 없었습니다.
약물이 중독이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은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보상감이 생기는 직접적인 쾌감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살이 다시 찌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전부입니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신체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치료제로 이해하는 쪽이 훨씬 정확합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위고비·마운자로 등 비만 치료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고도비만 환자도 전액 자비로 부담해야 합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보험 적용을 시작했으며, 국내 적용도 시간 문제로 보이지만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만을 의지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어야 치료 접근성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저탄고지나 간헐적 단식으로 고도비만을 탈출할 수 있을까요?
A. 제 경험상 저탄고지로 9kg 정도는 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유지도 됐지만, 20kg 이상 감량이 필요한 경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도 비슷한데, 저탄고지나 간헐적 단식 같은 식이요법은 경도 과체중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고도비만 환자의 비만 탈출에는 유의미한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kg 이상을 빼야 한다면 식이요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Q. 위고비나 마운자로 끊으면 무조건 요요가 오나요?
A. 임상 데이터상 위고비를 68주 투약 후 중단하면 대부분의 환자에서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약이 식욕 조절 시스템을 보조해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끊는 순간 그 보조가 사라지면서 기존의 식습관이 돌아오기 쉽습니다. 다만 약을 점진적으로 줄이면서 생활 습관을 함께 조정하면 체중 유지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Q. 비만 치료제가 중독되거나 기분이 이상해지지 않나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기분이 좋아지거나 쾌감이 생기는 직접적인 보상은 없었습니다. 예민해지거나 성격이 나빠지는 부작용도 거의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살이 다시 찌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전부이며, 혈압약처럼 몸의 기능을 정상 범위에서 유지해주는 치료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Q. 운동을 많이 하면 식이요법 없이도 살을 뺄 수 있지 않을까요?
A.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현실이었습니다. 운동으로 소모되는 칼로리는 한 끼 식사량과 비교하면 정말 미미합니다. 러닝으로 살을 뺐다고 느끼는 경우는 대부분 운동 자체의 소모보다 식욕이 조절된 결과입니다. 먹은 것을 뛰어서 상쇄하려는 시도보다, 식이 조절이 훨씬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결론
비만은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걸리는 게 아닙니다. 식욕을 조절하는 신체 시스템이 망가진 질병이고, 그 성공률 수치가 이미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닭가슴살과 고구마로 버티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지만, 뇌가 끊임없이 보내는 배고픔 신호를 의지만으로 이기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었습니다.
40kg을 감량한 전문가도 의학적 도움 없이는 유지가 어렵다고 인정하는 현실에서, 혼자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치료법을 찾아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자책의 굴레를 벗어나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을 되찾는 길은 의지를 더 쥐어짜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치료를 시작하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