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숙제를 AI에게 맡기는 장면을 처음 목격했을 때, 저는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딱히 뭐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빠르고 매끈한 결과물이 나오는데, 굳이 막아야 하나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과학사·과학철학 분야의 장하석 교수(케임브리지대학교)가 던진 한마디가 그 찜찜함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줬습니다. "AI의 가장 큰 위험은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을 빼앗는 것"이라고요. 이 글은 그 말에서 출발합니다.

직접경험을 잃으면 교육은 무너진다
제가 중학교 때 과학 실험 시간에 기계가 오작동해서 교과서에 나온 결과가 전혀 안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그냥 망한 실험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제가 과학에서 가장 많이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서 뭐가 틀렸는지 따져보고, 변수를 하나씩 제거하면서 원인을 추적하는 그 과정이 진짜 실험이었으니까요.
장하석 교수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교과 과정의 실험은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실험이 아니라는 겁니다. 학생들이 결과를 조작하거나,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베껴도 결과물이 완성되는 구조에서는 탐구 과정(inquiry process) 자체가 사라집니다. 여기서 탐구 과정이란 가설을 세우고, 실패하고, 수정하는 반복적인 순환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을 건너뛴 학습은 지식의 껍데기만 남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AI 남용의 문제를 '부정행위'나 '성적 조작' 수준으로만 보고 있었는데, 실은 더 근본적인 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야외 생물학처럼 답이 정해지지 않은 관찰 수업에서는 새로운 발견이 늘 열려 있지만, 정답이 있는 실험에서는 학생이 발견하는 게 아니라 확인할 뿐입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 탐구 과정 없는 실험은 지식 확인에 불과하며 진짜 학습이 아님
- AI가 결과를 대신 내주면 실패·수정·재도전의 루프가 끊김
- 정답이 열려 있는 관찰·야외 수업일수록 AI 의존의 폐해가 덜함
학습동기 없이는 무엇도 남지 않는다
장하석 교수는 뉴턴의 중력 이론을 공부하다가 미적분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달았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 "이번 달엔 미적분 해야 해"라고 시켜서 배운 게 아니라, 이걸 이해하려면 저게 필요하다는 걸 본인이 느꼈다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경우를 돌아봤습니다. 저도 영어를 가장 열심히 공부한 게 시험 때가 아니라, 해외 논문을 직접 읽고 싶다는 절박함이 생겼을 때였거든요.
학습동기(learning motivation)란 단순히 '하고 싶다는 의욕'이 아닙니다. 학습동기란 학습자가 스스로 목표와 이유를 인식하고, 그 이유가 학습 행동을 이끄는 내적 추진력을 뜻합니다. 외부에서 강요된 커리큘럼만으로는 이 내적 추진력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지금 교육이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를 학생에게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대입 수학 문제처럼 AI도 풀기 어려울 정도로 꼬인 문제를 밤새워 푸는 훈련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저는 솔직히 답을 모르겠습니다. 계산기와 AI가 그 계산을 수십 배 빠르게 해주는 시대에,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학생에게 억지로 앉혀두는 교육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반대로 "이 수학을 알면 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연결고리 하나가 생기면, 하기 싫던 과목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이게 제가 경험상 확신하는 부분입니다.
AI 시대 교육 현장이 겪는 혼란
국내 명문대에서 AI를 이용한 대규모 부정행위 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놀라움보다는 "올 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출처: University of Cambridge)에서도 AI 사용 범위와 평가 방식을 두고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국의 대응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일부 유럽 국가는 아예 디지털 기기를 교실에서 없애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출처: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는 AI 사용 자체를 허용하되 어떤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명확히 밝히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제가 보기엔 싱가포르 방식이 현실적으로 더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을 틀어막는 건 결국 더 교묘한 우회로를 만들 뿐이니까요.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이 이 혼란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생성형 AI란 텍스트, 이미지, 코드 등 새로운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하는 AI를 말합니다. 영국 대학 현장에서는 학생 리포트가 너무 매끈하게 작성돼 있으면 AI 사용을 의심하고, 문법 오류가 있어야 직접 쓴 글로 인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문계 교수들이 시험 대신 창의적 리포트를 장려했던 건 학생의 사고력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AI 등장 이후 다시 시험 중심으로 회귀하는 추세라고 하니 역설적입니다.
대학원 석사·박사 과정은 1대1 지도 방식 덕분에 AI 사용 여부가 금방 드러나 그나마 유지가 가능하지만, 수백 명이 수강하는 학부 강의에서 그게 가능한 구조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AI가 생성한 글과 제가 쓴 글을 나란히 놓으면 스타일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걸 수십 편씩 채점해야 하는 교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구별이 어렵습니다.
비판적사고로 AI를 조수 삼는 법
장하석 교수는 LLM(Large Language Model)에 대해 명확한 진단을 내립니다. LLM이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언어를 생성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을 말합니다. 핵심은 LLM이 데이터의 평균값을 내는 시스템이라는 점입니다.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학습한 데이터 안에서 가장 그럴싸한 조합을 내놓는 것이 LLM의 본질입니다. 즉, 진정한 창의성이 아니라 정교한 모방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AI를 완전히 끊는 것도, 무조건 맡기는 것도 아닌 조수처럼 쓰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테니스를 한번이라도 쳐본 사람이 프로 경기를 볼 때 훨씬 더 깊이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제가 먼저 고민하고 초안을 잡은 다음 AI에게 검토를 맡기면 AI의 결과물을 훨씬 날카롭게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AI에게 다 맡기면, 결과물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기준 자체가 없어집니다.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란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근거와 논리를 따져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스스로 써보고, 틀려보고, 고쳐보는 경험 없이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교육이 이 경험을 AI에게 통째로 넘겨준다면, 인류 역사에서 늘 오답처럼 보이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영영 배울 기회를 잃게 됩니다. AI가 잘하는 부분은 AI에게 맡기되, 걷기·요리·손으로 글 쓰기처럼 직접 해봐야 하는 최소한의 경험은 반드시 남겨둬야 합니다. 제 생각엔 그 경계를 교육자가 먼저 고민하고 설계해줘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 시대에도 기초 계산이나 글쓰기 훈련이 꼭 필요한가요?
A. 네, 필요합니다. 계산기를 쓰더라도 어림값이 맞는지 판단하려면 기초 수리 감각이 있어야 하듯, AI 결과물을 검토하려면 스스로 써본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 기초 없이 AI만 쓰면 오류를 오류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Q. 학교에서 AI 사용을 아예 금지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A. 현실적으로 완전한 금지는 어렵고, 효과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처럼 사용은 허용하되 활용 방식을 명시하도록 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더 교육적일 수 있습니다. 금지보다 어떻게 쓰는지 가르치는 게 핵심입니다.
Q. LLM이 창의적인 일을 못 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A. LLM은 학습 데이터의 패턴을 조합해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에, 기존에 없던 개념을 원점에서 만들어내는 능력은 구조적으로 제한됩니다. 물론 조합 자체가 창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창의성의 흉내에 가깝다는 시각이 과학철학 분야에서 유력합니다.
Q. 아이에게 AI 사용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A. 먼저 스스로 생각하거나 초안을 잡은 다음, AI를 검토·보완 도구로 쓰도록 순서를 정해주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지 말고 "이 부분이 맞는가, 더 나은 방법이 있는가"를 따져보는 습관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AI 시대의 교육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입니다. AI가 매끈한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낼수록, 학생이 서툴게 고민하고 틀리고 다시 시도하는 그 과정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집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확실히 느꼈습니다. 직접 해봐야 잘하는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 것이 되는 무언가가 생깁니다.
AI를 주인이 아닌 조수로 쓰는 태도, 그리고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을 교육자가 먼저 설계해주는 구조가 이 혼란을 헤쳐나갈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이 불편한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